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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M]오래된 정원-황석영
「오래된 정원」

유신반대의 시작을 함께한 오현우는 남수의 초청으로 청년운동이나 노동현장 쪽의 사람들의 모임을 참석하게 되고 그 이후 최동우를 만나 여러 토론을 나누며 사회운동에 깊이 들어간다. 그 이후 광주로 들어가 남수의 권유로 조직에 가입하고 사회운동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유신말기에 조심스럽게 활동을 한 그는 광주에서의 소식을 듣고 잠시 동안 휴면에 들어간다.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수사결과문이 나왔을 때, 그와 친구들의 이름은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라가 있었다. 1980년 가을, 광주민주화운동 이전에 광주를 빠져나와 달동네에서 얻은 방에서 지내던 그는 경찰에 쫓기게 되면서 친구들과 흩어진다. 그는 군대에서 만났던 선임하사 임중사가 운영하는 목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하며 도피생활을 이어 나간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벌집’에 사는 박군의 집에 얹혀살면서 그들과 어울리지만, 결국 그는 동지들과 연락하기 위해 명동으로 나갔고 그 곳에서 미행을 발견하고 도망친다. 벌집으로 돌아와 박군이 술김에 오현우가 지식인층 인 것을 떠들었고, 그 후에 경찰이 그를 잡기 위해 왔던 사실을 알지만, 그는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도망친다. 그 후 그는 한윤희를 만나 갈뫼에서 생활하기 시작한다. 갈뫼에서 한윤희와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뒷산에 올랐다 답답함을 느끼고, 광주에 들렀다 서울로 발길을 향한다. 건이 잡혀간 사실을 들은 후, 갈뫼로 돌아온 그는 한윤희에게 ‘히말라야 조난자가 발견한 바위틈’이야기를 한다. 갈뫼로 돌아온 그는 한윤희의 제안으로 텃밭도 만들며 적응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신문에 자신이 간첩단의 주범으로 사진과 수배사실이 나온 것을 발견하고, 동우 역시 검거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한 한윤희를 남겨두고 다시 광주로 향한다. 영등포역을 통해 잠시 집에 들려 가족과의 짧은 만남을 가진 후, 신림동 후배의 하숙집으로 갔지만 후배가 없어 ‘학림장여관’에 머물기로 하고 잠수용 신분증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 주민증의 사용으로 인해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교도소로 간 그는 독거수로서의 수감생활을 시작한다. 자신의 독방을 나름대로 꾸미기도 하고, 운동시간에 화초 기르기, 개미 돌보기 등을 하면서 수감생활에 적응해간다. 교도소를 옮겨다니며 여러 짐승들을 돌보기도 하고, 재소자들의 인권이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단식투쟁을 벌이기도 한다. 천사백사십사번의 죄수 오현우는 1998년의 어느 날, 18년의 감옥생활을 마치고 석방된다. 그는 누나의 집에서 며칠 머물다 자신이 검거되기 직전에 머물렀던 갈뫼로 떠나던 길에 같이 활동했던 건이를 만나 5.18 희생자들이 묻혀있는 무등산으로 가 옛 친구들과 재회한다. 그 후 갈뫼에 도착한 그는 그 곳에서 연인이었던 한윤희가 남긴 그림과 흔적, 일기 등을 보면서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고 한윤희의 자취를 좇는다.
한윤희는 빨치산 아버지로 인해 어려운 학창시절을 보낸 여자였다. 중학교 시절, 반공포스터에서 상을 받은 것으로 아버지에게 혼난 이후로 아버지의 과거에 대해 약간씩 알아가기 시작한다. 아버지를 원망하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간암으로 투병하는 동안 그를 간호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그로 인한 영향과, 대학시절 군사독재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자책으로 그 방면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성인이 되어 미술교사로서의 생활을 하지만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일본뉴스를 본 후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고, 선배언니로부터의 부탁으로 오현우의 도피생활을 도와주다 그와 사랑에 빠진다. 오현우가 구속된 후 그는 홀로 딸 은결을 낳고, 자신의 삶을 보다 진취적으로 개척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나고, 1984년 서울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화실을 낸다. 그는 동생 편으로 알게 된 송영태, 최미경과 친해지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학생운동에 뛰어든다. 미문화원 농성 이후, 송영태는 도피생활을 시작하고, 그 전에 먼저 도피생활을 위해 공장에 취업한 최미경은 그 곳에서 노동운동자로 변하여 노동자들의 인권을 위해 투쟁한다. 민주노조를 만들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파업을 주도하고 싸우던 최미경은 결국 분신자살로 삶을 마감한다. 딸 은결을 동생네로 입적시킨 후 그는 독일로 향한다. 당시의 한국처럼 독일은 서독과 동독으로 나뉜 분쟁지역이었다. 특히 베를린은 도시가 베를린 장벽으로 반쪽이 나 있었다. 베를린에 집을 구한 그는 이웃집에 사는, 10년 전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며 그 기억을 그리는, 마리와 친해져 많은 이야기를 공유한다. 그는 베를린에서 생활을 하다 우연히 만나게 된, 한국의 학생들과 달리 급진적이지도 않고 차분한 성격의 연구원 이희수와 사랑에 빠진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그 순간을 그는 마리와 이희수와 함께 겪었고, 송영태를 만나 베를린의 여러 곳을 둘러보며 통일을 경험한다. 기숙사를 탈출한 북한유학생 조영수를 회유시켜 다시 기숙사로 보내기도 하며 독일생활에 적응하다 평양을 다녀온 송영태와 다시 만난다. 이희수와의 동거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이희수가 출장길에 죽은 것을 알게 된 그는 큰 충격을 받고, 1년을 다시 독일에서 보낸다. 이희수의 죽음이 작은 사건으로만 기억될 때 쯤, 송영태와 함께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하여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까지의 횡단여행을 마치고 송영태와 헤어진다. 그 후 송영태는 월북한다. 귀국 후 지방 어느 대학의 선생이 되어 방학마다 갈뫼를 찾던 그는 갈뫼의 집을 정리하고 수리하며 오현우를 그리며 지낸다. 그러다 자궁경부암에 걸리게 된 것을 알고, 투병생활을 하다 1996년 여름, 마침내 사망한다.
오현우는 한윤희가 남겨둔 기록과 자신의 기억을 토대로 한윤희의 삶을 되짚어보면서 한윤희의 삶을 이해하고, 갈뫼의 아이, 은결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그 후 한윤희의 동생집에 있는 은결을 만난다.
“자본주의, 현대의 한국사회, 그리고 사랑”
1985년에 태어났고, 1990년대 초반까지를 미국에서 보낸 나에게 1980~90년대의 한국현대사는 고등학교 때 배웠던 교과서의 한 장면에 불과하다. 국경일 혹은 기념일마다 듣게되는 유신, 419, 518, 민주화운동, 군부정치 등은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의 이야기보다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나 스스로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니었고, 주변에서 이러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줄 사람도 부족하기 때문에 가끔 TV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토대로 어렴풋이 들어왔던 한국 민주화의 격변기에 대해 새로운 생각을 불어넣어 준 것은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이었다.
작가 황석영은 일반인으로는 한 번도 겪기 힘든 역사적 풍파를 온몸으로 받아낸 사람이다. 해방이후 평양 외가에서 지내다 분단 정권이 들어설 때 서울로 이주했다. 어려서는 6.25를 보았고 고등학교 때 4.19 혁명과 5.16 군사 쿠데타를, 대학시절엔 6.3사태까지 겪었다. 그 후 베트남 전쟁에 끌려갔다 제대 후 문단에 복귀하면서 유신독재와 싸웠고, 공장과 농촌 현장 등에서 일하며 전라도 해남과 광주에서 전국적인 현장운동에 참가하기도 하였다. 광주민주화운동이후 베를린에서 열린 제3세계 문화재에 갔다가 세계 각지에 문화운동 조직을 만들며 해외 운동권 인사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고, 이 관계를 바탕으로 범민족대회와 범민련운동의 일환으로 방북과 망명, 투옥을 겪었다. 이러한 작가의 경험은 「오래된 정원」의 큰 줄기를 잡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황석영이 「오래된 정원」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1960년부터 1990년대까지의 격변기 속을 살아온 자신의 삶이었다. 한윤희의 아버지를 통해서 빨갱이로 몰린 남한 사회내의 좌익지식인들이 겪어야 했던 삶과 고통,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마주해야만 했던 삶을 보여주었고, 오현우를 통해 80년대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던 대학생과 그들의 도피생활에서의 긴장감을 생생하게 표현했다. 오현우의 감옥살이는 황석영 그 자신의 감옥살이였다. 작가는 정치범으로 감옥에 가서 그곳에서 자신을 잊지 않기 위해 애쓰는 수감자의 모습으로 감옥에서의 자신을 표현했다. 그리고 오현우가 구속된 이후부터 90년대까지는 한윤희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그 당시의 우리네들이 겪었던 일을 담담히 묘사했다.
1950년대는 이승만 정권이 자신의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지식인을 ‘빨갱이’로 몰아 학대하던 시절이었다. 그러한 시절에 ‘좌익지식인’으로 찍힌 한윤희의 아버지는 숨 한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자신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신념과 사상을 포기한 체 시체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좌파빨갱이’로 찍힌 그들의 가족 역시 평온한 삶을 살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계속되는 정부의 압박과 전향, 신변보증과 계속되는 조사 등으로 지쳐있던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1959년 이승만은 자신의 가장 큰 정적이었던 조봉암을 간첩으로 몰아 사형시키기에 이른다. 1960년 4월 19일, 3.15부정선거에 항거한 4.19혁명과 김주열 열사의 시체 발견으로 이승만은 하야한다. 하지만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제 2공화국을 폭력적으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다. 이른바 5.16 군사정변으로 새로운 세상을 기대했던 국민들의 기대와 희망은 무너진다. 박정희가 자신의 독재를 지속시키기 위해 1972년 10월 17일 유신헌법을 발효하고 이로 인해 유신헌법 반대운동이 부산, 마산에서 부마항쟁이란 이름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9일 뒤인 10월 26일 박정희는 정보부 부장 김재규의 총에 사망한다. 그렇게 다시 정권이 국민의 품에 들어오는가 싶더니,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또한번의 쿠데타가 일어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난다. 「오래된 정원」에서는 오현우와 그가 속한 조직이 광주민주화운동의 시작을 주도했다고 한다. 한윤희가 오현우를 도와주는 것을 통해 그 당시의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을 어떻게 바라봤는지를 알 수 있다. 물론 그 당시의 정보통제로 인해 정확한 것은 몰랐겠지만, 진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광주민주화운동을 시작했던 사람들을 오히려 옹호하고 있다. 오현우가 구속된 이후의 일은 한윤희의 시선으로 담담히 그려진다. 송영태로 대표되는 학생운동은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위한 민중의 폭발이었다. 전두환의 간접선거로 군부독재가 연장되고, 이에 반발한 학생들의 민주화를 향한 시위가 계속 되던 1980년대 후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으로 여론이 좋지 않을 무렵, 학생들은 전두환 정권의 퇴진 및 대통령 직선제를 계속 요구하지만 전두환은 기존의 간선제를 유지하겠다는 4.13호헌조치를 발표한다. 6월 10일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6월 9일 연세인 결의대회에서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전경이 쏜 최루탄에 피격당해 쓰러지면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불이 붙는다. 한윤희는 이를 연일 계속되는 최루탄 냄새로 학교가 매캐하다고 표현한다. 결국 6월 29일 노태우의 호헌 철폐와 대통령 직선제 도입에 대한 수습 선언으로 시위는 마무리 된다. 여태까지의 4.19과 5.18, 6월 민주항쟁이 민주화를 위한 운동이었다면 이제는 민주화를 바탕으로 건강한 자본주의를 위한 운동이 펼쳐진다.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 분신자살한 최미경은 이러한 사회의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민주화와 노동자의 인권을 위한 사회 전반적인 움직임을 오현우의 눈으로, 송영태와 최미경을 바라보는 한윤희의 눈으로 표현했다면, 그 후 이야기의 커다란 줄기는 작가의 경험으로 넘어간다.
민주화항쟁 후 한윤희는 독일로 간다. 작가의 독일생활과 망명생활을 표현해 놓은 한윤희의 생활은 그의 심적인 안정감을 잘 말해준다. 한국의 청년보다 급진적이지도 않고 차분한 연구원 신분의 이희수와의 사랑이 바로 그 것이다. 또한 독일의 통일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장면을 생생한 묘사를 통해 독자에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 이후의 작가의 삶은 송영태를 통해 나타난다. 방북과 월북을 통해 한국 사회에 대한 불만감을 나타내는 것이다. 작가는 방북과 망명생활 후 한국으로 돌아와 자수하고, 수감생활을 시작한다. 이는 오현우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의 수감생활을 그려진다. 작가는 글을 통해 우리 사회가 겪었던 다양한 항쟁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오현우와 송영태, 최미경이 그토록 원했던 군부정치 타도와 노동 3권에 대한 투쟁, 또 한명의 전태일 최미경까지 전쟁 이후 우리 사회가 겪었던 뜨거운 열병을 묘사했다.
60년대부터 80년대 후반까지 지속되어온 사회운동은 한 집단에 의해 이끌어 진 것은 아니다. ‘빨치산’이라고 일컬어 진 좌익지식인과 70년대의 저항세력, ‘서울의 봄’ 80년대의 대학생과 노동운동까지 그 시대의 소위 지식인층의 주도가 우리 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세상으로 바꿔놓았다. 박정희의 개발독재시대는 철저한 계획경제체제를 통한 급속한 경제개발에 초점을 두었다. 어찌보면 독일의 나치보다도 더한 통제와 계획을 통해 단기간에 한국의 경제를 급성장시켰다. 그 때부터 사회운동은 민주화라는 정치운동의 색을 띄게 된다. 그리고 그 당시 노동운동과 민주화운동, 학생운동을 선도했던 지식인층은 현재 기득권층이 되거나 노동운동자가 되어 지금의 한국 자본주의의 완충지대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자본주의의 핵심을 형성하였고, 현재는 각 이익집단의 대표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의 여러 사회운동은 외형적으로 민주주의의 안정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그 이후의 노동운동들은 자본주의의 올바른 이행에 대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갈뫼는 한윤희와 오현우만의 유토피아이다. 오현우가 한윤희에게 말해주었던 히말라야 좁은 바위틈의 마을처럼 한번 들어가서 평온을 느끼지만 다시 나온 후에는 찾을 수 없었던 그런 낙원. 한윤희와 오현우는 갈뫼라는 낙원에서의 행복을 잠시 누린 후 자신들이 원래 살던 세상으로 나온다. 한윤희는 죽기 전에, 오현우는 석방 후에 다시 갈뫼를 찾지만 그 곳은 더 이상 예전의 그들만의 낙원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예전의 낙원을 찾지 못한다. 마치 히말라야 바위 틈에서 빠져나온 조난자가 다시 그 곳을 찾지 못하듯 말이다. 그들에게 갈뫼는, “오래된 정원”은 행복했던 지상낙원이며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추억 속의 공간이다. 그들이 갈뫼라는 지상낙원에서 잠시 있었다는 증거이자 자신들이 이룩한 사회에 대한 결과와 보상은 오로지 그들의 딸, 한은결 뿐이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오현우와 한윤희의 사랑이야기인 줄 알았고 하권을 읽기 시작하였을 때는 오현우와 한윤희가 살아가는 모습인 줄 알았다. 하지만 한윤희의 마지막 편지를 읽을 때, 이 소설은 그 시대를 가장 처절하게 받아들인 민중들의 평범한 이야기를 주인공들, 특히 한윤희의 눈으로 담담히 그려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윤희는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는다. 오현우가 떠났을 때에도, 혼자 은결이를 키울 때에도, 송영태와 최미경이 왔다 사라질 때에도, 이희수가 죽었을 때에도, 자신이 병에 걸린 후에도 힘들다 말하지 않는다. 단지 그는 시대를 묵묵히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이들의 사랑은 단순한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아니라 뜨거웠던 한국 사회를 묵묵히 받아들이고, 그 사회 자체를 사랑한 민중의 이야기다.
6.25전쟁 후, 한국 사회는 많은 격변기를 거쳤다. 그 중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사건들은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일 것이다. 잘못된 사회를 비판하고 잘못을 고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집권층이 아니라 언제나 공부하는 학생들이었다. 대학을 진학해서 입시가 아닌 사회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대학생들의 의무이자 특권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다. 오현우의 동생처럼 외국으로 나가버리기도 하고, 한윤희의 동생처럼 현실에 맞춰 살아가기도 하며 한윤희가 학생 때 잠시 사귀었던 조소과 상급생처럼 기회를 노려 기득권층으로 올라가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을 피하지도 않고 현실에 순응하지도 않았던 오현우같은 투사들은 결국 잊혀진다. 작가는 이러한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지금 이 순간을 편하게 사는 사람은 그 시절 현실에 맞서 싸우지 않은 자들이고, 투사들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서 너무도 편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속이 쓰렸을지도 모른다. 정부의 탄압을 피해 도피생활을 하는 오현우를 통해 우리는 그 시대의 신념과 가치를 이끌었던 사람들의 삶을 볼 수 있다. 대학에 간 이후 자신의 지식을 쌓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바른 사회를 지향하기 위해 사회로 뛰어든 그들의 모습을 통해 작가는 현재에 안주하고, 자신의 앞길만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현재의 대학생들을 비꼬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에 있어 우리에게 ‘오래된 정원’은 어디일까? 한 번은 들어가서 지상의 낙원을 느낄 수 있지만, 세상이 그리워 나오게 되고, 그 이후로는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우리의 갈뫼는 어디일까? 한윤희의 마지막 기록은 글을 읽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웠던 내 머리를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 “우리가 지켜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버티어왔던 가치들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아직도 속세의 먼지 가운데서 빛나고 있어요. … 당신은 우리의 오래된 정원을 찾았나요? 당신은 그 안에서 나는 이쪽 바깥에서 한 세상을 보냈어요. 힘든 적도 많았지만 우리 이 모든 나날들과 화해해요. 잘 가요, 여보.” 나에게는 자신들이 추구한 모든 가치가 바스러져 버린 현재에 대한 느낌과 앞으로에 대한 마음가짐을 드러내는 듯 보였다. 이 기록이 끝난 후, 오현우는 잘못된 자본주의의 폐해인 삼풍백화점 사건을 언급한다. 그리고 예전의 시민의 탄생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세상이 경제대란이라 말한다. 사회의 진정한 시민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독재정권의 노예가 아닌 민주주의의 주인인 시민이 되었다. 하지만 외형적인 민주주의는 이룩했지만 아직도 자본주의의 완성은 이루지 못했다. 오현우가, 그리고 작가가 걱정하고 기대하는 것은 시민의 힘으로 올바른 자본주의를 이룩하는 것이 아닐까?


